![]() 고문과 감금의 세계는 일상과 한참 동떨어져 있지만,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기 때문에 어렴풋하게나마 그 끔찍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Murder in the First 일급 살인>의 주인공(케빈 베이컨)은 감옥에서 사소한 죄목에 비해 지나치게 혹독한 대우를 받다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물론, 죽어라 전기 고문을 당하다가도 한 10분 뒤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격투와 총싸움을 즐기는 <24>의 잭 바우어 같은 사람도 있지만요. -_-;;) 동영상 & 한/영 자막 -- BBC.Horizon.2008.Total.Isolation.zip 제가 그 영화를 기억하기로, 앨카트라즈에서 케빈 베이컨은 발가벗겨진 채 창문도 아무것도 없는 작은 콘크리트 방에 몇년동안이나 갇혀 있었습니다. 간수가 가혹 행위를 했던 것도 같지만, 일상적인 구타보다는 빛과 감각이 차단된 상태로 갇혀 있는것만으로도 극도의 고통을 겪었고, 결국 정신이 나가 버렸죠. Horizon의 최근 에피소드 <Total Isolation>(완전 격리 실험) 을 보면서 바로 <일급살인>이 떠올랐습니다. 이 에피소드의 주제는 감각 차단(sensory deprivation)에 관한 실험입니다. 감각 차단이라는 용어는 위키피디어에 의하면 사람의 감각을 '의도적으로' 단절시키는 것이라고 하는군요. 즉 죄수나 포로를 상대로 행해지는 비인도적 행위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전 전쟁 포로 세뇌 이후로 이 방면의 연구가 가속되었다고 합니다. 과학적, 심리학적, 군사적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러나 위험성과 비인도적인 측면을 내포하는 실험이라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모양입니다. ![]() 위 사진은 관타나모 베이의 수감자입니다. 눈, 코, 입, 귀, 손 등의 감각을 차단하려고 저런 장비를 착용시킨 겁니다. 끔찍하네요..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저런 비슷한 용구를 착용시키고 실험을 합니다. 물론 자발적인 참가자를 상대로 인도적 환경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진행되는 실험이죠.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어쩌면 비공개 실험이나 동물을 상대로 한 같은 실험은 이전에도 해 오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 실험 참가자 6명은 48시간 동안 감각(주로 시각, 청각)을 차단한 독방에서 지내게 되고, 시시각각 외부에서 적외선 카메라로 모니터링합니다. 그리고 격리 전과 후에 한번씩 일종의 간단한 지능 테스트를 하는데요, 우열을 가리는 지능 테스트는 아니고 아주 쉬운 과제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전과 후의 결과를 비교하여 뇌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파악하려는 것이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결론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점을 한번 적어 봅니다. (물론 실험 결과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놓고 전문가들이 해석할 일이지, 보기 쉽게 편집된 다큐멘터리만 보고 왈가왈부할게 전혀 아닙니다. 단지 다큐에서 저는 이런 대목이 흥미있었다는 것..) ![]() 이번 실험에서는 참가자 6명을 두 팀(각각 남자2명, 여자1명)으로 나누었습니다. (1) 첫번째 팀은 방의 불을 끈 것 빼고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외부의 빛이나 소리는 들어오지 않지만, 자기가 내는 소리는 들을 수 있죠. (2) 두번째 팀은 위 사진처럼 눈가리개 고글을 쓰고, 헤드폰을 쓰고, 팔을 둘러싸는 토시까지 착용합니다. 헤드폰에서는 화이트노이즈를 계속 내보내고요. 별 차이는 없을지 모르지만 방에는 불을 켜 놓았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두번째 팀이 더 힘들 것 같은데.. (적어도 편집된 화면상으로는) 두번째 팀 사람들의 경우 잠만 자든지, 노래를 부르든지 하면서 그럭저럭 버팁니다. 반면 첫번째 팀 사람들은 모두 기묘한 환각을 경험했습니다. 혹시 고글이나 헤드폰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자각하는 것 자체가 '내가 눈이 안 보이는 것은 이것을 썼기 때문이지, 세상이 사라진것은 아니야. 따라서 사라진 시야를 메우고 있는 이 이미지들도 진짜가 아니야'라는 정보를 뇌에 계속 주고 있기 때문에 환각을 겪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화이트노이즈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저의 단순한 추측일 뿐입니다. ^^ 한편, 감각 차단에 의한 피암시성 증가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피암시성(suggestibility)이 무엇이냐면.. 대충 간단히 말해 '귀가 얇아져 있느냐'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암시에 얼마나 잘 노출되느냐 하는 것이죠. 위에서 말한 격리 전/후에 실시하는 테스트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그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검사합니다. 겉보기에는 기억력 테스트 같은데, 실상은 유도 신문 비슷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어떤 동양인에 대한 묘사를 한 다음, 질문할 때는 "아까 그 사람은 흑인이었습니까, 백인이었습니까?" 하고 묻는 식이죠. 물론 "둘 다 아니다" 라고 답하게 되는게 정상이지만 자신의 기억력이나 의지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 상태(즉 피암시성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흑인 아니면 백인으로 대답을 하게 됩니다. 즉 질문자가 말하는 내용이 솔깃하게 들리고, 그가 제시한 선택지 중에 답이 있을 것이다라고 은연중에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실험에서는 여성의 경우 격리 전과 후의 차이가 없었지만 남성 피실험자의 피암시성은 상당히 올라간 것으로 나옵니다. 쉽게 말해 감금을 당했을 때 세뇌되거나 허위 진술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지요. (이런 차이는 위에서도 밝혔고 다큐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과학적 결론을 바로 내릴 계제는 못됩니다.) 오랜 감금이나 고문 따위에 의한 허위 자백은 많이 보았던 것이고 새삼스럽지도 않지요. 그러나 고문이나 학대도 없이, 겨우 48시간을 고립시키는 것만으로 기억력이나 지적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되고 피암시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저는 아주 놀라웠습니다. "These findings suggest just how fragile the human mind can be when confronted with the simple reality of being left truly alone." (맺음말) '어둠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여타 에피소드에 비해 분위기도 조금 더 무겁고, 몇몇 대목은 꽤나 오싹합니다. 특히, 몇년 간의 독방 감금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나와서 증언하는 내용은 매우 안타깝기도 하고 상상만 해도 무섭습니다. 덜덜덜.. 직접 보시길. ^^ <Total Isolation> 스샷 (펼쳐 보기) 흔히 접하기 어려운 주제를, 그것도 실험 과정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흥미로운 에피소드였습니다. p.s. 자막 글꼴은 피노키오체입니다. Pinocchio.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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