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Four는 BBC의 4개 주요 TV 채널 가운데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 등을 많이 방송하는 곳이죠. 작년에 이 채널에서 Science You Can't See라는 표제 하에 세 편의 과학 다큐 시리즈를 내보냈습니다. 주제는 다르지만, 모두 19세기~20세기에 걸쳐 일어난 극적인 발전에 대한 내용이라고 묶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bsolute Zero>(2부작)는 열, 냉기, 온도 등의 미스테리를 밝혀 내고 저온 공학까지 발전하게 된 역사에 관한 것이구요, <Atom>(3부작)은 소립자에 관한 연구를 중심으로 20세기 물리학의 발전상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Dangerous Knowledge>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에 걸친 수학 기초론의 변혁기에 관한 것입니다. 다만 앞의 두 편과는 달리 이론적인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전통적으로 믿어 온 수학/과학의 확실성을 시험에 들게 한(?) 학자들 네 명의 순탄치 않았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탤릭체는 프로그램 내의 소제목) 게오르그 칸토어 (Georg Cantor, 1845-1918) - God's Messenger 집합론의 창시자. 최초로 무한에 대한 엄밀한 이론을 세웠고 수학 기초론 위기의 시발점이 됨. 루트비히 볼츠만 (Ludwig Boltzmann, 1844-1906) - The Genius of Disorder 통계 역학의 개척자. 열역학에 큰 업적을 남겼고 실재론적 입장에서 원자의 존재를 주장함. 쿠르트 괴델 (Kurt Godel, 1906-1978) - The Limits of Logic First-order logic의 완전성 정리 &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유명한 논리학자. 앨런 튜링 (Alan Turing, 1912-1954) - The Enigma 블레츨리 파크의 전설적인 암호 해독가. 컴퓨터 과학과 계산 이론의 아버지. 이들은 앞서 나간 연구가 학문적인 반대에 부딪쳤거나, 굳건한 기성 체계에 도전하여 '불편한 진실'을 들추어 내었거나, 사회적 소수자로 차별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네 사람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 이상으로 오래 시달렸거나 자살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진지하고 무겁습니다. 약 90분 가까이 되는 이 프로그램은 인물 별로 네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세 가지 테마를 담고 있습니다. (1) 수학과 과학의 확실성에 어떤 문제 제기를 했고, 이것이 학문적,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2) 당시 사회의 관념과 학계의 비판적 시각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 (3) 주인공들이 광기와 정신 이상에 이르고 결국 불행한 종말을 맞게 된 이야기. ![]() 많이 알려지지 않은 참신한 소재이면서, 과학자 특히 수학자들에 대해 대중들이 가지는 '별난 사람'이라는 편견과도 일면 부합되기 때문에 잘 만들면 재미날 수도 있는 주제입니다. 특이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소개됩니다. 자신이 수학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신이 선택한 메신저라고 믿었던 칸토어의 종교관이라든지, 전쟁 중에 국가를 위해 큰 봉사를 하고도 동성애 때문에 위험 인물로 찍혀 인생을 망치게 된 튜링의 이야기 등등.. 그리고 외연을 넓혀 1900년 전후 유럽 사회의 분위기와 대비시킨 아이디어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 다큐는 실망스러운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일단 큰 이유는 추상적인 수학을 다루는 영상물이 가지는 한계인 듯 합니다. 사실 난해한 수학적 아이디어를 TV 다큐에서 보여주기가 어렵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도대체 왜 이 사람은 이걸 주장했고 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반대했는지 얘기해 봤자 잘 와닿지 않습니다. 또 이들이 한 연구가 개인적인 불행과 어떤 인과 관계가 있었는지 심리학자까지 나와서 설명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위에 적은 (번호 붙여 요약한) 테마 세 가지 모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2% 부족했다는 거죠. 또다른 불편함은 위에 말한 틀에 맞추려다 보니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칸토어나 볼츠만은 인정 받은 것이 늦기는 했으나, 다큐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전면적인 비판을 받고 왕따가 되었다고 보긴 애매합니다. 우울증이나 정신 이상을 난해한 수학과 싸우느라 반쯤 미치고, 또 학문적 반대 때문에 반쯤 더 미친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약간 과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진행자가 보여주고 싶은게 너무 많았는지, 자기가 하려는 말만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뒤가 잘 연결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무한에 관한 칸토어의 연구는 수학의 확실성을 깨뜨리는 시도로 비쳤다' 이렇게만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집합론에 대해 아주 약간이라도, 그리고 러셀의 역설(이건 좀 헷갈릴테니 이발사의 역설 버전으로 바꾸면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있겠죠)에 대해 살짝 맛을 보여 줬으면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고 넘어가는 것 까지는 좋은데, 전문 용어들까지 별다른 해설 없이 마구 튀어나옵니다. 인터뷰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완전성, 계산 가능성, 힐베르트 프로그램, 형식주의, 튜링 머신 같은 개념을 언급하는데 그 뜻이 뭔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아요. 사실 이런 것은 적절히 편집하거나 전문가들의 인터뷰 앞뒤로 진행자가 부연 설명을 해 줘야 할텐데, 진행자는 진행자대로 열심히 자기가 하고 싶은 다음 얘기로 옮겨 가고 있네요.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편집이 아쉬웠습니다. 또는 욕심이 너무 과했든지요.. 자막 만드는 사람이 자꾸 중간에 끼어들어서 코멘트를 넣는 것을 싫어하는데, 어쩔수 없이 중간 중간 코멘트를 많이 넣었습니다. 그래서 자막에는 쓸 수 없는 변명 겸 불평을 이렇게 하는 중입죠.. ㅡ,ㅡ;; 사실 저에게는 이 주제가 어느 정도 익숙해서 별 의식 없이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았어요. 그런데 영어 자막을 완성한 다음 번역하려고 보니까 앞뒤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띄더군요. 특히 후반부는 문맥과 동떨어진 불친절한 편집 및 일부 진의 파악이 거의 불가능한 대사들로 인해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러쿵 저러쿵 툴툴 거리는 중..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다 보니, 새로운 다큐를 소개한다면서 이렇게 쓰고 있는 제가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변변찮은 자막에 대해 미리 변명하는건 이쯤 해 두지요.. ^^ 저는 딱히 과학 다큐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거나 사고를 자극하는 것은 다 좋아합니다. 잘 모르던 생소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든,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든 말이죠. 제가 올리는 다큐들도 그런 기준을 많이 고려합니다. <Dangerous Knowledge>는 완성도 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적어도 이 블로그에 올린 다른 수작들과 비교해서), 주제의 희소성 덕분에 새로운 내용을 접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매길만 합니다. ![]()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수학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청률 안 나오는 건 기본으로 접고 들어가야 하고, 그럴듯한 비주얼을 그려내기도 어려운데다가, 난해한 아이디어를 전달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교육용이 아닌 일반 수학 다큐는 몇 편 되지도 않죠. BBC나 PBS 같은 방송국에서 꾸준히 이런 프로그램들을 제작해 주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입니다. 제가 위에 쓴 비판(?)은 옆동네에서 부러워하는 주제에 배부른 소리 하는 것으로 들어 주세요. 평가란 주관적인 것이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눈으로 보고 좋으면 그만이죠. 그리고 위에 말한 것처럼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동영상 & 한/영 자막 -- BBC.2007.Dangerous.Knowledge.zip <Dangerous Knowledge> 스샷 (펼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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